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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유튜브/유튜브 괴담실록 [조선,동아시아 괴담]

괴담실록 조선을 뒤흔든 '저주인형 살인사건' 조선의 저주사건들

by 영화좋아합니다 2023.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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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저주란 주술로서 다른 이에게 재앙이 일어나길 비는 행위"로 예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죄로 여겨져 왔다.

그럼에도 이는 끊이질 않았고 점점 더 끔찍한 형태로 발전되곤 했다.
중국에서는 고대로부터 짐승이나 벌레 심지어는 사람을 죽여 저주 도구로 만드는 연매가 행해지기도 했고 일본에서는 대상을 본뜬 인형의 대못을 박는 우시노토 키마 일이라는 저주가 성행하기도 했다.
 
이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예로부터 상대를 저주할 때 쓰이는 저주 인형이 암암리에 사용되었고 중국에서 넘어온 연매와 같은 행위도 은밀히 자행되곤 했다. 

조선시대에는 이 같은 저주 행위를 가장 무거운 10가지 죄 십악 중 하나로 여겨 큰 사면형이 내려질 때에도 친족 사례와 더불어 사면에서 재회할 정도로 이를 엄히 다스리곤 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암암리에 행해지곤 했고 더욱이 신분을 가리지 않아 심지어는 궁중 안에서도 저주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조선 후기 장희빈이 왕후를 저주한 것이 발단이 된 무고의 오기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는 무려 9차례나 되는 주술사건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저주는 대부분 효험이 없는 것이었고 저주 사건들은 큰 피해자 없이 저주 당사자가 벌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나곤 했다.
 
그런데 어떤 사건들은 실제 저주로 사람을 죽였다고 의심받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6년 저주 인형으로 사람을 살해했다는 기이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제주에 살던 고승이란 양반이 멀쩡하던 중 갑자기 병을 얻어 며칠 만에 급사하였다.

그 같은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심스러운데가 많은 가운데 그의 집 주변 풀숲에서 수상한 종이 여러 장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의심스러운 정황이 관해서 주변사람들을 조사하니 이 사건의 중심에는 죽은 보순 아내 창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고순이와 혼인 생활을 하고 있긴 했지만 남편 모르게 다른 이와 정을 통하고 있었다.
 
그 상대는 바로 그녀 사촌 김진이라는 자였다. 두 사람의 금지된 관계는 날이 갈수록 깊어져만 갔고 창씨는 걸림돌인 남편을 없애고 싶했다. 이에 그녀는 자신의 숙부이자 상간남의 아버지인 김언과 함께 남편 고순이를 죽일 공모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저주였다. 그녀는 남편의 머리카락을 잘라 모아 그것으로 남편의 형상을 딴 인형 두 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가시를 잔뜩 꽂아놓고 신당에서 그를 저주하는 한편 또한 그를 저주하는 문구를 적은 종이 여러 장을 만들었다. 3일 안에 급사하라 장인은 이를 자신의 여종에게 주어 여러 암자와 신당에 묻게 했는데 여종은 이것이 주인 고순이를 죽이려는 뜻임을 알아채고 지시한 신당에 갖다 놓지 않고서는 집 근처 풀숲에 감추었다.
 
하지만 저주는 실제로 이뤄졌는지 고순은 며칠이 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비슷한 시기가 사건 외에도 여러 저주사건이 발생하곤 했는데 세종은 주문을 외워 사람을 죽일 수 있단 사실을 믿지 않았다. 다른 저주 사건에서는 범인으로 지목된 자를 끝내 풀어주게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달랐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자 세종은 저주를 꾀했던 장이와 김진에게 극형을내렸다. 저주의 가담했던 김진과 김원은 각각 참수와 교수형을 당했고 주모자였던 장씨는 능지처참에 처해졌다. 실제 저주로 인한 살인으로 고발된 사건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는 또한 저주를 이용해 한 집안을 거의 몰살시켰다. 고발된 사건도 기록되어 있다. 인조가 다스리던 시대 충청도 관찰사에게서 기이한 보고가 올라온다 한 권세 있는 양반 집안에서 사람들이 연달아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았는데 그 범행 수단이 다름 아닌 누군가의 저주라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이랬다. 청양에 살던 이복원이라는 양반은 어느 날 알 수 없는 괴질에 걸리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그는 하루아침에 몸져 누운 것도 모자라 사경을 헤매며 수시로 기이한 말을 내뱉곤 했다. 이상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집안의 다른 사람들 또한 꿈자리 가사나워 지더니 이내 같은 집에 살던 이복원의 형과 그 아들까지 그와 같은 괴질에 걸리게 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집에서 웬 끔찍한 물체가 발견되었다. 이는 목이 떨어져 나간 어린아이의 시체였다. 집안 사람들은 모두 섬뜩해진 않았다. 그것은 모두 기라는 저주 도구로목이 잘려 죽은 귀신을 이용해 근처에 있는 사람을 병으로 죽게 만들 때 쓰이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과연 얼마 되지 않아 제일 먼저 병에걸렸던 이복권은 끝내 숨을 거두었고 집안사람들은 필시 누군가의 저주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엔 누군가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바로 얼마 전 집안에서 쫓겨난 며느리 신 씨였다. 이복원 아들에게는 신숙녀라는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성품이 악독하고 말이 많다며 시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곤 했는데 감정의 골은 깊어져만 가다 끝내 시아버지 이복원이 그녀를 집안에서 내쫓아버렸다.
 
사람들은 신숙녀가 앙심을 품고 그들을 저주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에 그녀의 집에 쳐들어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샅샅이 뒤졌는데 땅속에서 기이한 것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사람의 뼛조각들이었다. 동물의 사체나 사람의 뼈를 땅에 묻는것 또한 저주의 방법으로 흔히 행해지던 것이었기에 이 시집 안 사람들의 의구심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마침 괴지를 앓던 이복원의 형과 아들이 줄줄이 숨을 거두니 그들은 격분하여 신숙녀를 관에 고발하였다.
 
조선에서는 부모를 시해야하는 것을 가장 무거운 죄로 여겼다. 그리고 그 방식인 저주 또한 용서받지 못할 죄 중 하나였으니 그들의 고발이 사실이라면 이는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관해서 일을 조사해 보니 실상은 다른데 있었다.
 
그들의 증언은 서로 어지러 엇깔렸고 신숙녀를 도와 저주에 쓰인 시체를 구했다는 집안의 종들은 처음엔 범행을 인정하다가 일이 커지자 이를 번복하였다. 게다가 앞선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증언이어서 신숙녀가 저주를 행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려웠으니 끝내 그녀에게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게 되었다.

이대로 간다면 추궁의 칼바람은 이보건의 집안에게로 향하게 되어 있었다. 조선에서는 무고죄를 또한 어미 다스렸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이런 막대한 죄악이 무고일 경우 무고한 이는 반드시 그 벌을 되돌려 받아야 했다.

하지만 죽은 시백부의 아들이 크게 문제삼으면서 사건의 방향은 정반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는 권세 있는 자였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 인조는 은근슬쩍 그의 편에서 오히려 신숙녀에게 무죄를 내린 관리들을 오게 가두고 이미 내려진 재판을 뒤엎고 재수사를 명했다.
 
대부분의 대신들은 법에 따라 신숙녀를 벌 줄 수 없다 목소리를 높였으나 인조는 끝내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은 결국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마니 인조가 그녀를 다시 붙잡아 축복하라 명하자 신숙녀가 목을 매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정확한 사건의 결론을 알수는 없다 다만 이 시집 안을 향한 저주가 행해졌고 결국 여러 사람이 죽음에 이른 것은 사실인 듯 보인다. 그들 집안에 부득 이를 가져다 놓은 것은 누구였을까.
 
그들에게 앙심을 품은 며느리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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