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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꼬꼬무 65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월 8일 베트남 안희완 안병찬

by 영화좋아합니다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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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방송사 : SBS

방송 날짜 : 2021년 10월 21일 ~

방송 시간 : 목요일 밤 10시 30분 ~ 12시

기획 : 최태환

연출 : 최삼호, 안윤태, 유혜승

출연 : 장도연, 장현성, 장성규

 

 

기획의도

sbs에서 방영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다. sbs 스페셜에서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3회 방송 후 반응이 좋아 정식 편성된 시즌제로 방송되고 있다. 주로 배경이 되는 소재는 한국 근, 현대사 부분으로 대개는 군사정권, 일제강점기, 시절 각종 사건 사고지만, 범죄 사건이 주제인 경우는 2000년대 이후 사건도 꽤 나온다.

 

주곽적으로 해석하는 '나'의 이야기

어느 날, 그 사건, 그 장명, 그날을 시작으로 "내"가 느낀 바를, '나'의 시점에서 주관적으로 전달한다.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패널들이 모여 이야기를 듣고 느낀 바를 각자의 친구에게 일상적인 공간에서 1:1로 전하는 콘셉트이다.

 

 

 

내용

 

1. 1975년 3월 서울

사무실 전화들이 요란하게 울리고 수화기를 든다. 수화기를 든 안병찬 씨, 대답도 하기 전에 상대방이 안병찬의 이름을 말한다. 전화기 너머에는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즉시 사이공으로 떠나라"라는 말을 한다.

 

당시 안병찬씨는 한국일보 기자의 신분으로 사이공 취재차 베트남으로 떠나게 됐다.

 

 

2. 베트남 함락작전

1975년 베트남 함락작전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베트남에 대한 역사 공부를 가볍게 진행해야 한다.

 

1954년 분단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북쪽에는 공산당이 남쪽에는 친미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 이념 갈등으로 남북전쟁처럼 발발한 전쟁. 한국과 미국은 남베트남 편에 서서 공산진영인 남베트남을 지원하고 

북베트남을 상대로 전쟁이 진행됐다. 무려 10년이나 말이다.

 

1973년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은 평화 협정을 맺었다. 한국과 미국은 지원병력을 철수했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975년.

북베트남의 기습 공격으로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3. 사이공에 도착하다

안병찬 기자가 사이공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북베트남이 점령한 지역이었다.

겨우 한 달 만에 남베트남 3/4가 함락되었다. 사이공이 함락되는 건 시간문제였고 그 시간은 사이공에 도착한 지 일주일 째 되는 날이었다. 

 

월남군의 기관차와 사이공을 방어하려는 대공포가 도심을 빗발치고 한복판에 있는 대통령 궁도 폭격을 당했다.

그때부터 거리에는 인적이 뚝 끊기고 사람들은 한국 대사관으로 모여들었다.

 

 

4. 시작된 대작전

외교관들의 임무는 교민들이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 사이공에 남은 교민들은 천여 명이다.

1975년 4월 22일 사이공 뉴포트항에 도착한 미군 함정.

교민들 1,360여 명을 태운 해군 함정 두 척, 한숨 돌린 한국 대사관 직원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사이공이 함락되게 되면 대사관도 더는 안전할 수는 없다.

남은 사람은 외교관 15명과 안병찬 기자, 이들은 베트남을 떠날 계획이 되지 않았다. 이미 뱃길은 막힌 상태, 비행기표도 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남은 그들은 미국 대사관으로 질주했다. 도착한 미국 대사관 앞은 아비규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난민촌이었다.

모두 미국 대사관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 대사관 앞으로 몰렸을 것이다.

미국 대사관 옥상에서는 최후의 작전인, 헬기 탑승 작전이 계획되고 있었다.

그곳에는 대사관 직원 15명과 안병찬 기자, 그리고 140여 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새벽 3시 그토록 기다리던 헬기가 도착했다. 1차 헬기 탑승했다. 그 헬기에는 안병찬 기자는 포함이 되었지만,

안희완 영사와 외교관 3명은 탑승하지 못했다. 곧이어 도착한 2차 헬기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만 탑승이 이뤄진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울부짖고 미국 대사관에서는 더는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최루탄을 던지고 총을 겨누며 미국 대사관 앞에 모인 사람들의 발걸음을 더는 다가오게 하지 못했다.

 

 

5. 사이공에 입성한 북베트남군

해가 뜨고 북베트남군은 사이공에 입성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부르던 월남, 남베트남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결국 출국하지 안희완 영사를 포함한 외교관 3명은 교도소에 수감당한다.

 

 

6. 48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때의 감정

수감 3개월 후 안희완 영사의 독방 문은 열리고 평양에서 온 북한 공작원이 면회를 왔다.

그리고 망명을 권하며 협박과 회유를 반복하는 심문이 계속된다. 상상만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다.

도움을 요청할 곳도 설움을 전할 곳도 없었다. 당시 언론 통제로 인해 한국에서는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고 언론 보도가 되었고 안희완 영사의 생사여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7. 사이공 함락 1년 후

1976년 남북으로 나뉘었던 베트남은 통일 됐고 베트남은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사이공은 호찌민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교민들과 대사관 직원들의 출국 허가도 드디어 떨어졌다.

하지만 3명의 외교관은 여전히 감옥에 그대로 있었다. 당시 정부는 베트남 정부를 설득하고 북한관의 협상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8. 1980년 4월

1980년 4월 13일, 낯선 사람 둘이 안희완 영사에게 찾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석방되었다. 감옥에서만 5년을 보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30년이 지난 2008년, 외교 문서가 공개되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5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안희완 영사는 악몽을 꾼다. 

 

 

 

출처

꼬꼬무 1975년 베트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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